叶子


叶子

叶子是不会飞翔的翅膀 翅膀是落在天上的叶子
잎은 날 줄 모르는 날개, 날개는 하늘에 떨어진 잎.
天堂原来应该不是妄想
천국은 애초부터 망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只是我早已经遗忘当初怎么开始飞翔
단지 내가 처음에 어떻게 날기 시작하였는지를 너무 일찍 잊어버렸을 뿐.
孤单是一个人的狂欢 狂欢是一群人的孤单
고독은 한 사람의 흥청거림, 흥청거림은 한 무리의 고독
爱情原来的开始是陪伴但我也渐渐地遗忘当时是怎样有人陪伴
사랑, 애초의 시작은 함께함, 그러나 나 역시 점점 그시절 어떻게 함께 했는지 잊어버렸을 뿐.


我一个人吃饭旅行到处走走停停 也一个人看书写信自己对话谈心
나 혼자 밥을 먹고 여행을 하며 곳곳을 가다서다한다. 혼자 책을 보고 편지를 써 자기와 대화를 하며 이야기 한다.
只是心又飘到了哪里就连自己看也看不清 我想我不仅仅是失去你
단지 마음은 또 어디로 떠다니는지, 나 조차도 볼 수 없다.
나는 너를 잃어버린것 뿐만은 아니였음을 느낀다.

by stairway | 2009/08/31 23:09 | 음악 | 트랙백 | 덧글(0)

사형제는 아직도 필요한가?

      한국사회에서 사형제 존치와 폐지에 관해 주기적인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그 양상을 보노라면, 사회를 경악케하는 극

악한 살인사건이 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되면 사형제 존치, 집행에 대한 여론이 불길처럼 번지고 그 후 또 잠잠해지곤하는

반복적인 여론추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냉정하게 돌이켜보자. 왜 사형제를 존치하고, 사형을 집행하고자 하는가?

그 주장의 큰 전제는, "극한한 범죄를 방지하는데 사형제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럼 그 전제가 타당한지를 먼저 검토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다음은 2002년10월31일 제432호 한겨레 21 기사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지난 4월 보고서를 내어 “사형제도와 살인율의 상관관계에 대한 가장 최근의 조사는 1988년과 1996년

두 차례 유엔에 의해 실시되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형집행이 종신형보다 더욱 뛰어난 예방 효과를 가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데 실패하였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사형제도 폐지와 범죄율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형제도의 폐지가 범죄율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캐나다의 경우 살인율이 가장 높았던 1975년,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전 살인이 인구 10만명당 3.09명

이었던 게 1980년에 2.41명으로 감소했다. 캐나다의 사형제도는 1976년 폐지됐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뒤 23년이 지난

1999년에는 1.76명으로 낮아졌는데 이는 1975년에 비하면 43%나 줄어든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를 신뢰한다면, 결론적으로 사형제도의 폐지와 범죄율의 상관관계는 없다. 쉽게 말하면 사형

제 등의 범죄형벌을 강하게 한다고 살인 등의 강력범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이다. 범죄율의 증가와 강

력범죄의 창궐 등은 문제는 사형을 집행하고 형벌을 높인다고 해결된다기 보다는 그 사회의 범죄가 발생하는 경제, 사회

적 요인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보는데서 그 실마리가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경우 죄와 형벌의 비례에서

매우 심각하게 형평을 잃고 있다고 보이지만 갈수록 범죄는 늘어가고 있다. 사형의 집행은 강력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어 범죄의 억제에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사실 범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이는 사형의

집행만이 능사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밝힌 기사에서는 사형집행과 살인에 관련한 미국의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사형집행 는다고 살인건수 안 준다




미국의 사형집행건수와 살인건수를 비교해도, 집행건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인구 10만명당 살인건수는 줄어들지 않는 것

으로 조사됐다. >>



     사형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사형제가 가져다주는 사회에 대한 이익을 말하여야 한다. 사형의 집행을

통해 사회정의가 숨쉬고 있다고 느끼고 싶은가? 나는 그보다는 사회를 좀먹고 있는 경제사범, 정치/경제권력층의 비리와

불법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통해 사회정의를 세우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극악한 범죄소식을 접하고 나면, "저게 사람인가?"라는 말이 앞서 나온다. 하지만 사형제를 존치하기보다는

감형없는 종신형, 일정기간 복역후 가석방, 감형할 수 있는 종신형 등을 통해 범죄인으로부터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이 가능하지 않을까? 더불어 오판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더욱 사형제는 모순이 있지 않나? 사회가 법의 이름으

로, 공익의 이름으로 인간을 죽이는 권리를 언제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by stairway | 2008/03/28 15:15 | 세상보기 | 트랙백 | 덧글(1)

폭죽터트리기(放鞭炮)

 
중국 호남에서 만든 세계에서 제일 무겁고 긴 폭죽(무게 2900킬로그램, 길이 23킬로미터)







   아시다시피, 중국에서는 설날, 즉 춘절에 폭죽을 터트리는 풍습이 있다. 물론, 춘절만이 아니라 결혼식과 같은 경사에서도 폭죽을 터트린다. 중국영화를 보면 긴 줄(鞭)에 폭죽(炮)이 주렁주렁 달리고, 하나의 폭죽에 불을 불이면 마지막 하나까지 연속해서 폭죽이 떠지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도 역사에는 완전 문외한이라 어떤 연유로 폭죽을 터뜨리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가볍게 생각하면, 경사스런 날이 있으면 마을사람에게 요란스런 폭죽으로 그 사실을 알려 부르는역할을 했을테고, 폭죽을 터트리며 흥을 돋구려 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 캐나다 서부해안에 살았던 원주민들에게는 포틀래치(potlatch)라는 축제가 있었다고 한다. 부족 내의 장례식이나 결혼식, 또 추장의 대관식에 부족 내의 구성원들은 물론 인근 부족까지도 초청을 해서 광적일 정도의 낭비와 무절제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성대한 잔치를 여는 것이다. 이 때에는 누구든지 풍성하게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카누(작은 배)를 부순다든지 비싼 어유를(물고기 기름) 불태우기까지 한다. 또한 포틀래치에서는 추장이 선물을 주는데 선물을 받은 쪽에서는 이러한 성대한 축제와 선물을 통해 상하위계질서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복종을 거부하는 쪽에서는 더 성대한 답례 포틀래치를 열어 권위경쟁을 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사는 집마저도 태워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축제가 "부의 재분배" 기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권위와 재산이 있는 자가 축제를 열어 일정정도의 부를 소비하면서 부가 추장과 같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축제를 여는 사람은 반대급부로 위계질서을 윗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제 곧 춘절이다. 이제 간간히 폭죽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면 올해는 그렇게 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방에 눈이 엄청내려서 모두 抗击冰雪에 열중이라 분위기가 폭죽터트리기에는 좀 어색하긴 하다. 폭죽터트리기가 포틀래치처럼 권위 세우거나 위세를 나타내려고 하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폭죽의 가격은 비싼것은 200, 300원을 넘는 것도 있어서 한달 월급의 3분의 1을 폭죽값에 써버릴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터트리는 행위 자체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풍속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낭비와 무절제의 모습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폭죽 터트려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현대에서는 그냥 흥을 돋구는 것에 불과하니까. 우리가 월드컵 승리에 도취해서 종로 한 복판에서 폭죽을 터트려서 얻는 것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끄럽고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오히려 그 곳을 벗어나고 싶게 된다면 더욱 그렇다.



 폭죽은 중국에서 부의 편중,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부의 재분배"의 기능의 결과라도 낳는다면 환영할 일이지만 폭죽 터트린다고 그것이 완화될 것은 아니기에, 폭죽이 가져오는 연기와 소음은 그저 중국인민의 눈과귀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by stairway | 2008/02/06 01:51 | 세상보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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